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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건축의 자원적 가치 인식과 북촌지역개선의 과제

IceBass 2008. 9. 22. 13:19

 

건축의 자원적 가치 인식과 북촌지역개선의 과제

임창복교수 (성균관대 건축학부)

 


1. 서 론

서울은 태조 이성계가 도읍을 정한지 600년이 넘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그러나 최근 도시의 근대화라는 명분으로 그 동안 쌓아온 역사의 켜가 하나 둘씩 우리의 곁을 떠나고, 이제는 그 흔적을 찾기도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5대 궁궐을 제외하면 그나마 남아 있는 곳은 가회동의 일부와 북촌지역의 800여채 한옥이 전부이다.

한 해에 수십만 채씩 아파트 공급을 하는 국가에서 얼마남지 않은 수도서울의 한옥을 제대로 가꾸고 유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정부를 탓하기 전에 분명 오늘을 사는 이 땅의 시민들도 그 책임을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동안 이곳의 한옥이 멸실되어감을 막기 위해서 85년 문정희 교수가 「한옥지구에 대한 도시설계」를 계획한바 있고, 90년에는 김홍식 교수에 의해 「전통문화지대 복원정비 실시계획」을 세우고 추진한바 있다. 그러나 모두 현지주민의 반발과 당국의 적극적이지 못한 자세로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한다.

이런 싯점에 4.3 그룹에 의한 91년 가회동 11번지 계획은 계획안도 매우 신선한 것들이었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대규모로 개최된 공청회에서 건축가들이 계획안을 직접 발표하는등 적지 않은 사회적 의미를 지닌 행사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계획안도 기존의 한옥을 대체하여 현대식 저층고밀형 집합주택을 제안한 것이 그 주요내용이었다.

그런가 하면 최근까지도 북촌에서 벌어지는 개발의 양태나 건축가들의 현대식 건축계획이미지를 접하게 되면, 그것이 과연 북촌의 모습을 가꾸어 가는데 보탬이 될까에 의문이 갈 때가 많다. 필자는 이제 북촌을 살리려면 그 중에 뛰어넘어야 될 산중에 하나가 건축을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며, 그 중에 하나가 「한국적 표현」 또는 「전통적 표현」에 대한 입장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전통표현에 관한 논쟁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독립기념과 또는 예술의 전당에서 보듯이 관공서에서 「한국적 전통미」의 구현을 설계조건에 넣은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그때마다 건축계의 식자들은 이를 비난하거나 현대건축을 모르는 관리들의 횡포라고까지 몰아 세우기가 일쑤였다. 한쪽은 여러 현대건축의 동향을 볼 때 우리의 문화적 상징성과는 동떨어진 건물만이 들어서고 있으니 전통건축과 유사하게 만들어서 그 속에 새로운 기능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자세이고, 다른 쪽의 주장은 지금 현대의 재료와 공법 그리고 기능이 요구하는 합리적인 형태는 결코 복고적 형태 모습의 재현이 될 수는 없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논쟁에서 건축계의 전문인들은 시대정신을 내세운 서구식 근대 건축의 당위성을 강조해 관리들의 시각이 고루하며 권위적인 의식의 결과라고 몰아세우는 것으로 결말이 나곤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는 좀 바꾸어 얘기 한다면 전자는 형태에 기능을 수용할 수 있고 아직도 전통건축의 외양을 재사용 할 수도 있지 않느냐 하는 시각일 것이고, 후자는 기능에 따른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인바, 필자에게는 이 양자의 논리 인식이 우리의 건축역사를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과도 관련되는 것이고 북촌의 보존과 개발과도 연계되는 것이어서 여간 중요한 의미를 지닌 논의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

여기서 이 양자가 의미하는 배경 논리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전자가 보이지 않는 기능보다는 구체화된 물리적 실체 그 자체에 중요성을 둔 것으로 자원적 가치(resource value)에 관심을 둔 결과라고 하면, 후자는 건축을 시대정신을 내세우며 이 시대 사회, 경제, 또는 문화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실체의 산물(product)로서만 보아야 한다는 논리라고 규정지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양자간에 어느 쪽이 이 시대에 더욱더 요청되는 시각인지는 각자의 건축관과 대상 건축물의 콘텍스트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건축이 현대까지 오게 된 역사적 변천과정과 급속한 근대화에 따른 압축성장과 문화지체적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우리는 건축의 「산물적 시각」 못지않게 「자원적 시각」의 가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건축 근대화의 역사는 일제시대로부터 시작되었으나 자주적 의지에 의해 진행된 것은 해방이후부터 본격화 되었다고 하는 데에 이견이 없는 듯하다. 일제시대에는 일본건축문화의 이식도 있기는 했으나 중앙청 건물을 비롯해서 은행, 관공서, 종교 건축 등에서 보듯이 서구 건축 문화의 이입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해방이후 혼란기를 거친 후 6·25전쟁에서 의한 파괴와 건설 그리고 60년대 이후 전개된 근대화 과정을 겪으며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 근대주의 건축이 우리사회에도 풍미하게 되었고 그 관성은 지속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일본인들에 의한 서구화를 모델로 한 건축문화의 시대를 보내고, 기능주의 건축을 모델로 한 「국제주의」건축문화의 습합(習合) 와중에서 돌출된 것이 「한국적인 표현」이라는 과제인 것을 알 수 있다. 지나친 서구화와 기능주의적 사고에 젖어 있었기에 나온 당연한 반사적 측면도 없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하기에 이러한 욕구가 과연 잘못된 시각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필자의 시각으로는 우리의 근대화 과정이 서구의 그것과 다르고, 건축문화적 배경이 상이하므로 당연히 그 자리매김도 다를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양식(洋式)건축은 그 근원이 다르므로 배제하더라도 지금과 같이 서구지향적 사고를 바탕으로 해서 기능적 시각에 의존할 때 아무리 새로운 건축형태를 실현해 보아야 그 집적의 결과물로 한국적 정체성을 갖는 환경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우리가 한국전통건축의 보이지 않는 정신을 이어받아 그 문법을 현대건축에 응용해 보더라도 그 형상이 전달해 주는 문화적 의미의 실체를 외면하고서는 소위 한국적 분위기를 만들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오늘날 한국의 건축을 보는 시각에서 「산물적 시각」(prodcut approach)으로만 한정하려고 하는 것은 부족하고, 그 형상이 갖는 「자원적 시각」(resoure approach)도 동시에 요구되는 시기라는 점을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주장은 결코 건축이 당대의 문화를 배경으로한 시대적 산물이 되어야 한다는 원론적 시각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 형태는 그 자체가 산물이자 곧 자율적 측면이 있는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2. 건축을 보는 두 가지 시각

건축과 환경을 보는 데에는 적어도 두 가지 견해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건축이라는 물리적인 객체 그 자체에는 자율성이 없는 것으로서 산물로서만 간주하려는 시각이 있을 수 있고, 다른 하나는 그것이 자원으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 견해일 것이다.

우선 산물로서만 보려는 관점은 건축계에 너무나도 보편화된 시각으로서 형태가 만들어지게 되는 배경의 작가 의지나 정신에 좀더 원인적 관심을 두려는 것이다. 즉 건축의 형태는 그것을 만들어낸 작가 의지의 결과물이며 환경은 그와 같은 결과물의 집합체적 산물이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러한 시각의 특징은 건축 오브제나 형태 자체의 제작과정에서 작가의 자의적 측면에 주의를 집중시키고 역사적 관심사는 상대적으로 줄여가는데 있다.

즉 어떻게 그 부분 요소들이 서로 엮어지며, 어떻게 그것이 전체적으로 통합되었는지, 또는 다른 외부의 참조없이 어떻게 그 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그것이 재사용되며, 그 형성요소와 과정이 재결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집중하게 된다. 여기서 건축의 운용과정이란 자발적이고 내부적이며 순수한 아이디어에 근거하고 주변적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보는 태도이다.

이러한 접근이 건축에 꼭 불건전한 것만은 아니다. 사실 위대한 작품들은 모두 자신이 개발한 보다 특별하고도 개별적인 언어로 발전된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건축 역사에서 17세기말 끌로드·페로 이래 고전건축의 규범은 점차 붕괴되고 작가의 자의적 의지가 강조돼 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이러한 시각은 개인의 창작의지가 중요한「원인」이고, 만들어진 형태는 「산물」로서만 존재하고 그 다음 창조 행위에는 별반 어떤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시각을 의미한다.

같은 맥락에서 문화결정론적 시각으로 건축을 보려는 자세도 그 형태의 원인이 개인에서 사회로 바뀌었을 뿐 건축의 형태를 정치, 경제, 사회적 가치와 기술적 상황에 대한 종속 변수로서만 간주하려는 태도이다. 이렇게 개인이나 사회의지의 산물로서 건축과 환경을 보려는 시각은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이집트의 피라밋이 태양신을 숭배하는 영혼불멸사상의 결과물이라든지, 파르테논의 스케일이 인간적인 것은 그들의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이라든지, 중세 광장의 형태는 바로 중세시민들의 켜뮤니티 의식의 소산이라는 등의 해석이 바로 산물적 시각으로 건축을 바라보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고건축을 설명하는데에도 그 원인을 자연과의 조화나 음양오행사상 또는 유불선 등의 종교관과의 관련속에서 그 형태의 원인을 찾으려 한다.

아마도 이러한 경향은 건축이란 것이 인간의 의지와 정신의 소산임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오히려 건축과 도시의 형태가 산물(product)일 뿐만 아니라 인간에 의해 이용될 수 있는 자원(resource)이 될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한 인식의 결여이다. 여기서 만들어낸 도시·건축 형태가 인간의 행동과 인식의 근원이 되고 재창조의 어떤 의미있는 기능을 할 수 있으리라는 시각이다.
포퍼(K.Popper)의 이론을 빌린 스탠포드·앤더슨(Stanford Anderson)에 의하면 건축과 도시 형태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준자율적(semi-autonomous)존재로서 파악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여기서 준자율적이라 함은 건축이 전적으로 개인 창조의지만의 산물이 되어서도 곤란하고,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인습(convention)만의 산물도 아닌 중간자적 객체라는 것이다. 이를 역으로 해석하면 우리가 만들어낸 물리적 환경이 그 자체에 자율적 측면이 있어 그 창조자인 인간에게 또다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견해이다.

우리가 환경결정론적(environmental determinism) 시각에는 전적으로 동조하지 않지만, 환경가능론(environmental possibilism) 또는 환경개연론(environmental probabilism)등에 동조하고 있는 것은 따지고 보면 물리적 환경이 인간의 행동과 의식에 영향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이론들이다.

캐나다의 도시사회학자인 마이클슨의 주장대로 물리적인 형태를 크러스터화하면 서로간의 커뮤니티 의식이 증진된다든지, 문이 따로 나 있는 주거에서는 부모들이 자녀 돌보는 역할을 하기가 힘들다고 보고하는 내용들은 모두 물리적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 대표적 연구내용들이다. 이러한 환경과 인간행동은 나아가 인간의식에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알렌산더(C.Alexander)나 린치(K.Lynch)의 인식심리학(congnitive psychology)의 적용이나 스투더(Studer)의 환경설계에 접근하는 「시스템 분석적 접근방법」은 모두 종합적 구조로 환경을 이해하려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얼마전 루브르 박물관에서 페이(I.M.Pei)에 의해 피라밋형 유리 형태가 응용된 것은 이집트인들이 가졌던 것과 같은 영혼불멸의 사상에 의한 산물이라기보다는 형태 자체가 갖는 자율적 속성의 재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중요한 것은 물리적 환경이 인간의 의식과 행동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앞서 소개한 포퍼나 앤더슨이 주장하는 내용도 인간의 의지와 물리적 제약요소 그 어느것도 건축과 도시형태를 만들어 내는 데 원인적 우위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양자가 모두 원인적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어느것도 결정론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만들어내는 건축과 도시형태가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의 정신과 함께 만들어진 물리적 환경유산 두 가지가 모둔 다 원인이 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런던이 대화재 이후 도시의 많은 부분을 새롭게 만들려고 노력했으나 마지막으로 채택된 계획안은 불타기 바로 이전에 존재하던 것과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 유사한 것으로 복구되었다든지, 암스테르담 확장계획에서 그 넓은 지역을 순식간에 쾌적한 정주환경으로 만들어 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들이 이미 익숙해 있던 기존 환경에 대한 인습을 바탕으로 길과 집을 지어갈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길과 주택 하나하나에 새로운 시대정신과 작가적 의지를 찾는데 노력하기보다 그 이전까지 모두에게 익숙해 있던 물리적 환경 바로 그것이 생각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뜻이다.
건축에서 유형학에 대한 논의가 그치지 않고 있음도 유형을 선험적(a priori)인 것으로 보든 후험적(a posteoriori)인 것으로 보든 그것이 다음 창작행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고에서 출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건축과 환경분야에는 이전에 만들어진 모든 산물이 곧 다가올 미래의 자원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3. 건축의 형태적 측면과 형상적 측면의 이해

서구건축의 변천을 보는 시각으로 대표되는 것이 뵐프린의 이원주기설이다. 서양 양식건축의 전개는 이성과 감성의 시대적 성향에 의해 합리주의와 낭만주의가 교차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시각이다. 즉 그리스나 로마 건축과 같은 합리주의 뒤에는 고딕과 같은 낭만주의가 있었고, 르네상스나 바로크 건축 그리고 절충주의와 근대주의 건축에서도 같은 반복의 논리가 전개되어 왔다고 보는 시각이다.

그런데 포스트모더니즘이 등장되던 때이기는 하지만 1976년 발표된 알란·콜훈(Alan Colquhoun)의 「형태(form)와 형상(figure)」이라는 글은 건축을 또 다른 이원적 시각으로 보려는 주장이어서 무척 흥미롭고 우리의 현실과 관련시켜서도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형태(form)란 자연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 역사적인 특수 의미가 배제된(degree zero), 그리고 이성에 의해 추구된 형체(configuration)를 가리키고, 형상(figure)은 그 의미가 역상와 문화에 의해서 주어진 형체를 지적하는 것으로 그 개념을 구분하고 있다.

이러한 개념구분에 의해 서양건축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양식건축의 형상은 그 은유적 표현까지 생각할 때 19세기말까지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왔고 아직도 대중 건축속에서 끊이지 않고 나타나는 경향임을 볼 수 있다. 즉 각종 양식 건축은 이러한 역사의 변천과정에서 그 형상의 인습성과 대표성이 형성되어 왔고 사회적인 사용을 통해서 점차 그 의미가 다양화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돔(dome) 건축은 비록 로마시대 건축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후대의 로마의 권위를 재현하고 상징하려고 할 때 다시 사용되었고, 고딕건축의 양천성은 비록 중세시대 신의 숭배 결과물로 나왔다고 하나, 학교건축이나 마천루 초창기 계획에서 폭 넓게 재활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다윈의 진화론적 시각을 건축에 응용할 때 「형상」의 추구가 18세기 이후에는 현저히 감소하는 추세를 감지할 수는 있다. 특히 원시적 경험(primitive experience)의 회복노력이 점증할 때 로지에(Laugier)에 의해 제안된 원시오두막집(primitive hut)이론은 아마도 대단히 획기적인 것으로 이성에로의 복귀를 주장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들이 취한 자세는 고전 건축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으며, 소위 원시 오두막집을 고전건축의 원형으로 바라보고 도릭양식처럼 기둥과 보 그리고 박공으로 구성되는 단순형태를 추구하고 있다.

그 후 고전주의 건축의 형상을 개혁적으로 수용하려던 노력은 프랑스혁명기의 예언적 건축가들에 의해서였다. 르두(Ledoux)나 블레(Boullee)등이 당시로서는 양식건축의 형상이 시대적으로 잠재된 현실과 대응된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상의 의미가 사회규범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므로 크게 볼 때는 Greco-Roman 수법을 지속적으로 이용해 왔음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전통적 요소를 새로운 수법으로 구성한 것이며 따라서 고전양식의 의미를 수정하고 보다 더 발전적으로 해석한 측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렇게 「형상」이 꾸준히 추구되었던 반면 순수 Gestaltung의 개념이 등장되는 것은 18세기 후반 이론가인 Quatremere de Quincy로부터 유래했다고 볼 수 있어 양식적 특성을 배제한 추상적 개념으로서의 유형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건축과 관련시켜본 형태의 부류는 19세기말까지 이론적으로 체계화되지는 않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개념은 결국 Herman Muthesius를 통해서 였다. 왜냐하면 그에게 영향을 준 Christopher Dresser 등의 작품은 그 형태가 어느 정도의 추상성과 단순성 그리고 순수성으로 특징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견해는 그 후 20세기에서도 연계되어 Jeanneret Ozenfant이 1920년대에 조소적 예술(plastic arts)은 우선적으로 기하학적 특질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도 알 수 있고, Mondrian의 추상미술에서도 발견되며, 세계1차대전 전후에 전개된 바우하우스, 더·스타일, 구성주의 등이 모두 순수형태 추구에 의존한 「형태건축」의 근간이 되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1920년대 이후 비록 모더니즘을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규정해 다투어 수용하려고 했었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60년대까지 건축계의 큰 흐름은 추상적인 형태의 추구가 아무런 도전없이 지속되어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던 것이 70년대 후반부터 소위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이 일게 되면서부터 역사와 문화를 암시하는 「형상」의 가치에 대해 새삼 주목하게 되었다.

이렇게 「형태」와 「형상」이 반복되는 건축역사적 발전을 보며, 우리는 어느 시점에서건 인습적인 의미를 전달해주는 형체(configuration)의 반복 요구 가 지속적으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특히 70년대 후반부터 이러한 형상적 전통(figural tradition)의 회복을 위해 노력한 두 그룹의 건축가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찰스·무어나 로버트·벤츄리는 지붕, 창문, 열주 등과 같은 형상의 파편(figurative fragments)을 사용하되 개성적이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주도록 구성하고 있다. 즉 그들은 역사의 문화의 형상에 의해 형성된 의미를 보다 현대적으로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리고 알도로시와 같은 신합리주의자 그룹은 보편적인 유형만을 추구하며 상황성은 거부하고 건축 그 자체의 자율적 전통에 속하는 원형(原型)을 추구하려 든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Alan Colquhoun과 같은 비평가는 이들 두 그룹, 즉 「신현실주의자」(neo-realists)나 「신합리주의자」(neo-rationalists)들 모두가 건축의 형상적 특성과 그 의미론적 특성을 수용한 자세로 평가한다. 물론 이러한 노력이 형태 건축의 추구에 의해 충족되지 못하는 사라진 전통의 전면적인 회복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형태적 건축만으로 급속히 채워져가는 도시의 상황을 고려하면 형태자체가 「도형」으로서 갖는 인지도도 떨어지고, 오히려 형상적 건축이 그들의 도시적 상황과 맥을 잇는다는 측면에서도 그 가치가 새롭게 인식된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로마보다 도시의 역사가 뒤진 파리, 특히 18∼19세기에 이룩된 파리의 도시 모습에서나 신생독립국 미국의 많은 도시의 경관에서도 우리는 어떤 자원으로서의 건물 가치가 존재함을 경험할 수 있다. 건축근대화의 발전적 시각이나, 추상적 형태 건축의 진화론적 시각의 산물로서만 본다면 무의미할 바로 그 절충주의 건축물들이 오늘날 그들이 꿈꾸는 새로운 건축의 바탕자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4. 한국적 배경의 확보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서구건축 발전의 역사를 보면 그들이 결코 형태만을 고집하는 산물적 시각에만 집착하지 않고 자원적 시각의 수용에 의해 전체 도시건축을 그들의 유구한 문화적 유산에 걸맞는 환경이 마련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같은 논리로 우리의 도시도 이제 신물적 접근만으로는 소위 한국적 건축환경의 생성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전통건축과 접목된 또는 접목될 수 있는 한국적 현대건축이 드물었음은 작가들만의 능력과 노력이 부족해서 그리된 것은 아니라고 보인다. 그들이 처한 환경, 즉 오늘날 우리의 도시환경이 소위「한국적 건축」이 잉태될 만한 바탕이라기보다는 어느덧 세계에 보편적인 건축 바로 그러한 환경으로 우리의 도시가 바뀌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게슈탈트 심리학의 장이론(field theory)에 동조한다면 같은 형태라도 그것이 놓이는 배경에 따라 그 도형의 인식이 달라지게 마련이고, 따라서 같은 건물이라 하더라도 전달되는 메시지는 그만큼 다른 것이다. 같은 평지붕의 근대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고딕성당 옆에 세워진 경우와 한식의 건물 옆에 세워질 때에는 그 환경적 성격이 같지 않다. 이를 역으로 생각해 보면 우리가 시도하는 근대 건축물의 집합체가 한국적이지 못하거나 생경하다 함은 그 자체에도 문제가 있겠으나 오히려 배경에도 이제 커다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물량적으로 볼 때 이미 한국적 배경이 될 수 있는 요소는 점차 사라지고 이 땅의 문화적 의미는 탈색된 추상적 형태의 건물만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가 「한국적 건축」 또는 「한국적 환경」을 조성해 보려고 한다면 「한국적」건축 자원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한국적 현대 건축문화의 바탕이 마련되고, 그러한 바탕의 연장선상에서만이 새로운 한국적 현대건축이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이론적 논의 는 이미 하브라켄(J.Habraken)이 건축과 환경을 물고기와 물의 관계로 비유한 데서도 잘 이해가 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물고기가 아무리 뛰어봐야 다시 물속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고, 그래서 서로간에는 긴밀한 상관성이 있어야 된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지고 우리의 전통건축을 볼 때 자연적인 측면이 강조되는 것은 이해가 가능하다. 주요 산속에 배치된 사찰은 물론이고 배산임수라는 풍수지리설의 영향으로 자연을 하나의 배경으로한 건축이었고, 마을에서도 초가지붕들 속에 보여지는 기와지붕으로 된 전통마을의 모습을 상상해 보면 자연이라는 물속에 있던 물고기였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려졌다. 달라져도 엄청나게 달라졌다.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와 유리의 바다로 메워진 것이 오늘의 도시적 상황이다. 아직도 물이 자연인 것으로 알고 콘크리트의 숲속에 남아있는 전통양식의 초라한 스케일과 생경함은 볼모로 잡혀온 포로와도 같다. 전통의 건축은 그대로 있는데 주변 상황이 그 전통건축과는 전혀 무관하게 바뀐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본의 아니게 물에 맞지 않는 물고기가 된 셈이다.
이제 우리의 도시에서는 더 이상 자연만의 물이 될 수 없고 대부분의 경우 콘크리트나 유리, 도배된 타일이 우리의 물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건축도 이렇게 변화된 환경속에서 조화될 수 있는 것으로 치환될 필요가 있다. 1930년대 이래 일본건축들, 북한의 인민문화대궁전 그리고 북경의 자금성 주변에서 보는 크고 작은 전통건축의 형상들은 모두 동양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회상시키고 경관적 의미 관계를 강화해주는 자원들이다.

우리의 도시상황도 모든 구석이 큰크리트와 유리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자연과 전통적 요소가 부분환경으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따라서 도시의 대부분이 콘크리트와 유리로 바뀌어가는 지금 전통적 요소로 볼 수 있는 물을 보존하는 것도 필요하고, 더 나아가 이를 확장하여 새로운 자원으로 만드는 일이 시급할 것이다. 아무리 근대적으로 변모되는 도시라 하더라도, 점적으로, 선적으로 또는 면적으로 흩어져 있는 한국적 전통의 단편들을 맞추고 꿰메어 새로운 바탕을 만들어 놓아야 그 속에서 놀 수 있는 한국적 현대건축이라는 새로운 물고기가 태어날 수 있을 것이다.



5. 북촌지역 개선을 위한 과제

이제 이상에 논의한 시각으로 북촌을 들여다 보며, 다음과 같은 긴급 제안을 하고 싶다.
첫째, 현재의 목조한옥은 한채의 멸실도 인정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개별 한옥의 실태를 조사하고 또 그 상태를 목록화 하자. 현재 시행되고 있는 한옥의 개·보수지원 프로그램은 매우 적절한 사업이고, 더욱더 보완되어 목조한옥을 가급적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북촌지역내 비 한옥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가급적 목조한옥으로 다시 환원하는 작업도 장기적으로는 병행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둘째, 외곽도로변이나 주요거점지점 또는 가회로와 같은 관통도로변은 그 규모가 커 1층 한옥으로 마감되기에는 부적절한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가급적 전통건축의 유형과 스케일을 응용하여 새로운 기능을 수용할 수 있도록 제안해 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인접지역이나 돈화문로와 같은 가로도 가급적 전통양식의 담장, 기와나 목조건물의 양식으로 디자인 가이드 라인을 주어 현대식 건물이면서도 부분적으로 전통요소를 수용하여 「한국적 배경」을 마련하는 작업도 요구된다.


출 처: 북촌한옥마을(hanok.seoul.go.kr)/북촌문화포럼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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