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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사랑산 644m / 충북 괴산/ 충청도의 산

IceBass 2011. 3. 16. 13:20

 

 

 

  하늘에 제를 지내는 제당이 있어 제당산(祭堂山)이라 불려왔던 산이 어느 날 이름이 바뀌어 사랑산이 되었다. 사람이나 산이나 이름을 바꾸는 일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연리목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으면 이름이 바뀔까, 사기막리 제당골의 산 이름 바뀐 사연을 확인하러 가는 고속도로에 장막을 친 듯 안개가 짙다.

 

  사기막 들머리 용추슈퍼의 문은 굳게 잠겨있고 안개는 더욱 짙어진다. 주변을 돌아보며 안개가 걷히길 기다리기로 한다. 다시 차에 올라 긴 추위에 얼어붙은 선유동을 돌아보고 화양동으로 향한다. 화양동에 등산학교 후배가 살고 있다며 윤태동 씨가 울바위 주변 식당 앞에 차를 댄다. 물레방아 슈퍼, 식당, 민박까지 운영하는 태동씨의 후배는 박동규 씨로 도토리 밤톨처럼 야무진 사십대 초반의 여성이다. 아침식사를 하며 동행을 요청하니 흔쾌히 승낙하며 주섬주섬 배낭을 꾸린다. 동규 씨는 90년대 초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암벽과 빙벽까지 타는 실력가라고 태동씨가 귀띔해 준다. 동규 씨에게 사랑산의 숨겨진 비경코스를 물으니 거기가 바로 이곳, 울바위코스란다.

 

 

  물레방아슈퍼에서 화양동 쪽으로 오십여 미터 지점 도로가에 울바위가 있다. 자유등반 암장으로 전국에서 손꼽히는 장소다. 울바위 루트를 개척한 클라이머 중 한 사람인 태동 씨는 마치 고향집에 온 듯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울바위를 오른편으로 끼고 산길을 오른다. 이정표 하나, 시그널 하나 없는 조용한 길이다. 사랑산 정상까지는 북쪽능선을 따라 오르내리기만 하면 된다. 이십여 분 만에 전망바위가 나오지만 가스로 인해 먼 산 조망이 시원치 않다. 그러나 화양구곡 건너편 지척의 도명산과 낙영산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입춘이 지나 날씨는 많이 풀렸으나 군데군데 녹지 않은 잔설로 걸음이 더디다.

 

  산에 든지 한 시간이 지날 무렵 산불감시초소와 함께 전망대가 나타난다. 삼면이 시원하게 터진 대단한 조망터다. 건너편으로 나래를 펼친 대간능선의 흐릿한 실루엣만으로도 충분히 황홀하다. 동규씨가 손을 뻗어 청화산, 조항산, 대야산능선들을 가리킨다. 맑은 하늘 아래 육안으로 식별하는 산보다 이름으로 더 가깝게 다가오는 산, 산 이름들.

  걸을수록 이름처럼 어여쁜 산이다. 부드러운 흙길이 이어지다가 심심치 않게 바위가 나타나 가벼운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십여 분 울창한 숲을 지나면 유감없는 전망대가 나타나고 다시 이십여 분 걸으면 또 멋진 전망대가 나타난다. 사기막 들머리 쪽과 달리 바위나 전망대에 붙여진 이름도 없다. 이름 없는 전망대에서의 조망은 혼자 독차지한 것처럼 특별하다. 굴바위를 지난 삼거리에서 정상방향 왼쪽 길로 접어든다. 능선을 경계로 북쪽사면엔 흰 눈이 그대로 쌓여있고 남쪽사면엔 봄기운이 넘실거린다. 그러다 불쑥 나타난 제 4전망대, 남쪽으로 가령산과 낙영산, 도명산, 백악산과 속리산 문장대가 보이고 뒤편 북쪽으로는 사랑산 정상이 보인다. 사기막리에서 보면 이곳에서 바라보는 정상은 사랑산의 뒷모습일 터, 자태가 무척이나 단아하다.

 

 

  고스락은 전망대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독수리바위를 지나 다시 5분 거리에 있다. ‘괴산의 명산 사랑산’이라는 협소한 안내판이 소나무가지에 매달려있고 사방은 소나무 가지들로 인해 조망이 어렵다. 그보다 서운한 건 잠시라도 앉아 쉴 자리가 없다는 것, 올라왔던 길로 15분여 다시 내려가 제 4전망대에서 늦은 점심을 먹는다.

 

 

  644봉 삼거리에서 울바위 쪽 길을 버리고 사기막 방향으로 향한다. 서서히 가스가 걷히며 하늘색이 파랗게 살아난다. 잠시 숲을 지나는가싶더니 바위봉우리 위에 타원형의 바위 하나가 위태롭게 서 있다. ‘이곳에서 뽀뽀를 하면 반드시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씌어있는 사랑바위다. 유치한 발상이긴 하지만 이정표를 삼기위해서라도 바위 이름은 필요하고 이름을 짓다보면 영 엉뚱한 이름도 지어지기 마련일 터. 뒤이어 타작마당 같은 마당바위 위에 세워놓은 듯 서 있는 코뿔소바위가 나타난다. 바위를 돌아가며 코뿔소의 형상을 더듬던 일행이 멀리 하늘금을 그으며 달리는 장성봉과 대야산, 조항산, 청화산을 찾아낸다. 제3전망대에 이어 코끼리바위를 지나고 제2전망대가 나온다. 이 구간들이 사랑산의 백미다. 코끼리바위 오른편으로 상주방향 송면터널로 향하는 49번 지방도가 보이고 그 너머 가령산과 옥녀봉, 군자산, 보배산, 칠보산이 보인다. 사기막을 들머리로 하지 않고 반대편 울바위를 들머리로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은 제 1전망대에서 더 확고해진다. 발아래 사기막리와 그 너머 아가봉, 옥녀봉, 그 뒤로 군자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이 멋진 조망을 산을 오르면서 뒤로 둘 것인가 산을 내려가면서 앞에 둘 것인가를 계산하면 답이 나온다.

 

 

  사기막 날머리에서 150미터 진행지점에 용추슈퍼가 있다. 용추슈퍼에서 다리를 건너 왼쪽 계류를 따라 이동한다. 20여 분 거리 좌측 사면 50미터 상단부에 연리목이 있고, 그 아래 용추폭포가 있다. 빙폭이 된 용추폭포의 윗 소는 물이 얼마나 깊은지 빙폭의 색깔이 아예 비취빛이다. 결 고운 화강암반석으로 이루어진 병풍 같은 폭포다. 얼어붙은 폭포임에도 근처로 가니 금방이라도 빨려들 듯한 강한 기운에 뒷걸음이 쳐진다. 용이 발자국을 남기고 승천했다는 용추폭포에서 나와 연리목을 만나러 간다. 연리목을 두고 폭포부터 찾은 심정은 좀 복잡하다. 감옥 같은 보호철책에 둘러싸인 사랑나무, 사랑 깊은 것도 죄인가 싶어서다. 눈이 쌓여있는 급사면 위로 연리목이 있다. 주변 소나무들에 둘러싸인 연리목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고 연리목을 둘러 싼 보호철책이 먼저 눈에 들어와 가슴을 할퀸다.

 

 

  각기 다른 몸으로 태어나 하나의 몸으로 합쳐진 연리목을 두고 중국 남북조시대에선 부모와 자식사이의 지극한 효의 상징이라 말했고, 당나라 현종 때는 백거이가 ‘장한가’를 지어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했다. 우리나라에선 남녀 간의 사랑에 한정하지 않고 상서로운 조짐으로 여기기도 했다. 서민들 사이에선 연리목에 기도하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설과 연리목에 올라가 기도하면 마음 속 연인에게 상사병이 옮아간다는 설도 있다. 연리목에 올라가 기도를 올리는 이들이 많았던 것일까. 그래서 연리목에 올라가지 말라고 삼엄한 철책을 두른 것인가. 연리목을 사랑의 상징으로, 행운을 가져다주는 길조라고 여기는 괴산군에서는 연리목을 관광자원화 하겠다는 방침인데 그러기에는 미관상 조악한 철책이다.

 

  되돌아 나오는 길에 연리목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부부는 부부로 맺어지면서부터 한 몸이요, 부모 몸을 빌려 태어난 자식이 이미 한 몸이었던 부모와 다시 한 몸이 되고자 한다는 것도 억설이다. 서로 다른 몸이면서 한 몸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관계, 이 생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의 염원, 자신을 버려서라도 한 몸이 되기를 원하는 간절한 기원. 연리목에는 그런 상징성이 담겨있지 않을까 하는…. 말자, 이러다 새로운 전설이 생겨나겠다.

  사기막리에서 기다리고 있던 동규씨 부군의 차를 얻어 타고 출발점인 울바위로 돌아온다. 화양동의 도토리 밤톨, 동규씨와 후일을 기약하고 차를 돌린다.

 

INFORMATION

 

≫ 산행길잡이

○ 울바위~ 범바위~ 산불감시초소, 전망대~ 제 4전망대~ 독수리바위~ 고스락~ 삼거리~ 사랑바위~ 코뿔소바위~ 제 3전망대~ 제 2전망대~ 코끼리바위~ 제 1전망대~ 사기막리 용추슈퍼~ 연리목~ 용추폭포(5~6시간 소요)

○ 사기막리 용추슈퍼~ 제 1전망대~ 코끼리바위~ 제 2전망대~ 제 3전망대~ 코뿔소바위~ 사랑바위~ 삼거리~ 제 4전망대~ 고스락~ 644봉~ 연리목~ 용추폭포~ 용추슈퍼 원점회귀(3~4시간 소요)

○ 용세골~ 남쪽 지능선길~ 585봉~ 560봉~ 고스락~ 독수리바위~ 610봉~ 코뿔소바위~ 연리목~ 용추폭포~ 용세골 주차장 원점회귀(5~6시간 소요)

 

  제당산(祭堂山)이 사랑산으로 바뀐 것은 2002년도. 괴산군이 사랑산 주변 시설정비작업을 할 때다. 마을 주민들조차 산 이름을 제대로 아는 이가 없었고, 원로들을 찾아 물어도 이 산이 제당산임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고 한다. 그때 마침 희귀목인 연리목이 발견되어 <괴산의 35명산>제작팀에 의해 사랑산이라는 새 이름이 탄생하게 된다. 괴산의 35명산을 일일이 답사하고 산행기를 쓴 오성복(괴산군청) 씨가 ‘사랑산’이라는 산 이름을 탄생하게 한 주인공이다. 그러나 제당산도, 사랑산도 현재까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제작한 지도에 이름을 실리지 못한 실정이다.

  일반적인 코스로 알려진 사기막리 들머리보다 인적이 드문 울바위 들머리 코스가 더 흥미롭다. 화양동 울바위를 들머리로 북릉을 타고 610봉 삼거리까지는 직선코스다. 이정표나 시그널이 없어도 길 찾기가 어렵지 않을 뿐더러 미답의 길을 걷는 재미까지 있다. 심심치 않게 나타나는 전망대들이 이 산의 포인트다. 전체적으로 힘든 코스가 없이 무난하고 고스락에서 사기막리로 내려가면서 수시로 나타나는 기암들이 한층 흥미를 돋운다.

울바위~ 사기막리 코스는 대중교통이 불편한 게 흠이다.

 

≫ 교통

○ 대중교통: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괴산까지 06시 50분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하루 19회 운행한다. 1시간 50분소요. 청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괴산행은 수시로 있다. 1시간 5분소요. 괴산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연 의원 앞 시내버스승차장에서 지촌리행 시내버스(아성교통 034-834-3351)이용 용세골과 송면, 사기막리 행 버스는 하루 4회 06:20, 09:10, 15:00, 19:10 운행하며 괴산으로 나오는 버스는 앞의 시간에서 45분 더한 시점이다.

 

○ 승용차: ①중부고속도로 이용시 괴산나들목이나 증평나들목~ 증평군내~ 592번 지방도~ 부흥사거리~ 금평삼거리~ 화양1교~ 울바위 제1교

②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나들목~ 괴산나들목~ 송면방향 49번 지방도~ 사기막리~ 용추슈퍼

 

≫ 숙식(지역번호 043)

○ 숙소: 청천면 송면리 울바위 앞 물레방아 민박(833-6653). 사기막리 용추슈퍼 민박 (833-4674). 거북산장(833-7150). 이외 괴산군청의 http://www.35mt.com에서 보다 많은 숙소와 식당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지촌리에서 용세골 입구 방면 달천변에서 야영과 오토캠핑을 할 수 있다.

○ 식당: 물레방아 식당(염소탕과 보양탕, 민물매운탕)833-6653. 솔뫼골(버섯전골, 올갱이국, 토종닭)833-8017. 이외 http://www.35mt.com에서 보다 많은 숙소와 식당 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또한 청천면 근처의 신토불이가든(043-832-5376)과 괴산 시내의 기사식당(043-833-5794)의 올갱이 요리가 유명하다.

 

≫ 주변볼거리:

청천면 화양리의 화양구곡과 선유구곡이 특히 절경이다. 화양구곡내의 송시열 유적과 채운사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사담리에는 천년고찰 공림사가 있다. 수령 천 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장관이다.

 

월간 2011년 3월호

http://san.chosun.com/

글·사진  차은량 수필가. 산문집 <꽃멀미> 발간

 

 

출처 : 풍경, 그리고 에세이
글쓴이 : 민들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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