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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따라 정치학

IceBass 2008. 10. 17. 14:30

선배로 부터 받은 글인데, 공감이 가는 부분이 있어 옮겨적어 봅니다.

 

Subject: 딴따라 정치학

만인의 연인이라 불리는 한 스타에게는 <자살>마저도 아름다운 것인가. 홍콩 배우
장국영이 자살했을 때 팬들의 반응은 마치 일본 제국주의 시대 <집단 할복극>을
보는 듯하여 끔찍하였다. 사람들은 왜 자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자신의 욕구를 투사해 공명하는 것일까.



정치란 대중이 소비하는 기호품이다. 그러나, 정치는 일반 소비재 상품과 다른
속성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구매를 하면 할수록 대중은 자신이 구매한 상품에게
더 강하게 예속되는 주객전도 현상이 심각하게 발생한다는 점이다. 대중이 어떤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면 할수록 대중은 자신이 지지한 정치인에게 더욱
심각하게 지배되어 간다. 그래서 비판 없는 지지는 위험한 것이다.



북한을 예로 들면 인민들이 김정일 체제를 강하게 지지하면 할수록 김정일의 대중
지배력은 강해지고 대중은 김정일이란 정치 상품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종교적
성향이 강한 사회, 집단주의가 강한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는 사회, 가부장적
질서가 강한 사회, 농경주의 전통이 강한 사회는 특히 더 그러하다. 김대중과
전라도의 관계, 박정희 박근혜와 대구와의 관계, 노무현과 노사모의 관계,
김영삼과 부산과의 관계를 보면 대중이 특정 정치인들과 주종관계를 이룰 때 그
부작용은 극심하게 나타난다. 물론 여기서 대중은 종속적인 입장이다.



딴따라 권력 역시 정치적 속성과 한치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 속성이 더
옹골차다. 딴따라 권력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대중이 딴따라란 상품을 구매하면
할수록 딴따라의 대중 지배력은 커진다. 딴따라 권력은 딴따라가 방송 언론
매체를 독점하면서 비약적으로 커진다. 대중은 그들의 돈으로 딴따라를 만들고
만들어진 딴따라를 구매하기 위해 또 다시 돈을 쓴다. 결국 딴따라는 대중의
돈으로 권력을 만들고 그렇게 생긴 권력으로 다시 대중을 지배한다.



시민의 돈으로 유지되는 방송은 당연히 시민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프라임
시간대에 15초 정도의 광고를 내려면 1회에 5천만원 이상의 거액을 지불해야
한다. 모든 국민의 이익이 한꺼번에 걸려 있는 방송이란 시간은 그만큼 값이 비싼
것이다. 대통령 선거 방송조차도 쉽게 시간을 낼 수 없고 그나마 국민의 혈세로
방송료를 내야만 가능하다. 그렇게 일반인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비싸고 접근이
거의 불가능한 방송 시간을 딴따라들에게 내어주고 그 과정에서 스타로 포장된
딴따라를 소비자들이 다시 비싸게 구매하면서 대중은 딴따라와 방송의 노예가
되어 간다.



자기 돈으로 딴따라를 스타를 만들어 놓고 그 딴따라를 소비하기 위해 다시
지갑을 열어 돈을 지불하고 있는 대중이란 결국 딴따라 권력에 종속된
바보들이다.



한 여자 연예인이 자살한 사건을 두고 각 방송사들이 다투어 동료 딴따라들을
내세워 고인의 삶을 포장하고 미화하고 있는 걸 보면 그것이 바로 김일성 주체
사상 학습 시간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그 비참하고 모진
사건을 기회로 대중을 악플러로 몰아 붙이는 짓거리는 얼마나 두려운가. 이는
딴따라 권력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괴이하게 크며 또 대중이 방송의 주체가
아닌 일개 소비자로 전락한 반증이며 우리 사회의 비판적 이성이 완전히
해체되었다는 반증이다.



스타로 살던 여자 연예인의 자살은 사회적 충격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
자살 사건이 충격적이라 하더라도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뉴스가 될 수
없고, 딴따라의 자살마저 비장하게 미회되고 대중이 마치 피의자인양 죄의식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슈팅 게임이 늘어나 아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하니 슈팅
게임 자체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처럼 매우 근거 없고 교활한 대중 조작이다.
여자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니 강간 사건이 증가한다는 주장처럼 모욕적이다.



김제동은 최진실 자살 사건 방송 도중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압력을 받는 김정일에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인민으로서 죄송하다고 죄의식을 갖고 사는 북한 인민의 사고와 전혀 다르지 않는
망발이다. 대체 무엇이 미안하다는 말인가. 감성적인 사춘기 청소년의 귀에나
발릴만한 소리로 국민을 상대하는 방송에 왜 대중이 돈을 지불해야 하나.



생활고를 못 이겨 동반 자살하려 11살 짜리 아들을 목졸라 죽인 후 자신의 목숨은
끊지 못해 아들 살해범으로 검거된 30대 여인의 비극과 일가족 3 모녀의 자살
그리고 독거 노인의 방치된 시신의 발견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미안하다.



딴따라는 기호품이다. 그것이 자기 취향에 좋은 사람도 있고 싫은 사람도 있다.
어차피 딴따라란 존재가 대중의 기호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품이기에 대중의
질시와 시기와 반감을 참을 수 없다면 상품으로서 대중 앞에 나서지 말아야 한다.
대중의 사랑은 좋고 당연한 자신의 후광이고 반감은 인격 모독이란 말인가.
그토록 한국의 딴따라가 주체 사상처럼 신격화된 무오류의 존재인가.



별 븅.신같은 것들의 권력질에 구역질이 난다. 딴따라가 우리 사회 규범이고
지배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