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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 길 - 전라도닷컴

IceBass 2008. 10. 13. 15:38

천천히 느릿느릿 마을 속으로 사람 속으로
‘지리산길’ 1구간 ‘다랭이길’을 걷다
남신희 기자  

▲ 한 뼘이라도 땅을 더 만들려는 절박한 노력이 이룬 층층의 곡선들. 창원마을 앞 다랑논.
ⓒ 김태성 기자

발은 혀처럼 맛을 알았다. 길의 맛.
숲길, 고갯길, 논둑길, 마을길, 자갈길…. 길은 조각보처럼 이어졌다. 한 길을 매듭지으면 또다른 경계가 펼쳐지고 또다른 시작이 열렸다.

공사나 돈다발로 급조할 수 없이 시간과 사람과 자연이 함께 오래도록 부대끼고 몸 섞으며 이뤄낸 길. 직선으로 주욱 뻗은 대로가 흉내낼 수 없는,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처럼 규격화되지 않은 맛이 그 길에 스며 있었다.

이름하여 ‘지리산길’. 몇박 며칠의 종주, 하루 몇 킬로 진군…그런 숫자나 목표에 연연하지 말고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보라고 권하는 길이다.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경제와 효율의 길이 아니라 오로지 ‘걷는 기쁨’을 위한 길, 직선에 익숙했던 눈과 몸에 절로 곡선이 들어차는 길들이다.

ⓒ 김태성 기자

3개 도·5개 시군·100여 개 마을 잇는 장거리 도보길

사단법인 ‘숲길’이 산림청의 지원을 받아 지리산 트레일 코스를 내놓았다. 지리산 둘레 300km 길을 환(環) 형태로 엮었더니, 3개도(전남·전북·경남) 5개 시군(구례·남원·하동·산청·함양) 16개 읍면 100여 개 마을을 잇는 장거리 도보길이 되었다. 하루 7시간씩 걸을 경우 32.5일이 걸리는 거리. 지리산을 감싸안는 그 둥그런 원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 길이 완전히 이어질 시점은 2011년께. 지난 4월말 ‘다랭이길’과 ‘산사람길’ 2개 구간 21km가 먼저 열렸다.

‘숲길’ 이사장인 도법 스님은 “지리산 도보길에는 속도의 문화를 느림과 성찰의 문화로, 수직의 문화를 수평의 문화로 되돌리자는 소망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 수직으로 바쁘게 오르는 정복의 길이 아니라, 수평으로 눈높이를 맞추며 천천히 걷고 누리는 길.

1구간인 다랭이길은 전북 남원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경남 함양 마천면 금계마을을 잇는  10.68km 구간(매동마을-리기다소나무 조림지-귀농학교 뒤 중기·원백일마을-사방댐-중황·상황마을-등구재-다랑논길-창원마을-금계숲길-금계마을-의탄교)이다.

▲ “깨 숨거”. 지리산길 초입 매동마을 밭에서 만난 할머니. 이 손
들이 들판에 생명의 초록을 키워내고 있다.
ⓒ 김태성 기자

▲ “쌀금이 워낙 싸서 남는 것도 엄따. 논이 있신께 있는 논 묵히들
몬해서 일허는 것이제.” 창원마을 다랑논에서 일하는 김봉귀 할아
버지.
ⓒ 김태성 기자

길이 시작되는 매동마을은 실상사 가까이에 있는 마을. 마을 생김이 매화꽃을 닮았대서 ‘매동(梅洞)’. 고샅길 걷다 보면 담벼락 그림들을 만난다. 오늘의 농촌현실과 관련, 무엇보다 ‘빈집’에 주목한 전주 ‘공공작업소 심심’ 등이 몇 해 전 ‘빈집에서 놀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린 벽화들이다. 벽화보다 더 오래 눈길이 머무는 건 돌담 틈새마다 피어난 꽃들. 사람 떠난 빈 집의 돌담도 제 가슴에 꽃들 하나씩을 너그러이 품어 안고 키우고 있다.

마을 뒷자락에 펼쳐진 소나무숲은 오래된 자랑거리. 매동마을에 내려앉은 세월을 고요하고도 강력하게 일깨우는 나무들이다.
밭에서 만난 할머니는 이제 막 시작된 걸음을 배웅해준다. 나이는 “팔십서이”. “깨 숨거”라고 말하던 할머니는 연신 “그 먼 질을 언제 가까” 걱정을 보탠다. 도와줄 황소도 없이 가없는 일의 들판에 엎드린 콩쥐마냥 저 너른 밭에 언제 깨를 다 심을까가 더 막막한데, 일하는 사람이 노는 사람을 걱정한다.

길을 가다 보면 이 밭 저 밭에도 이 논 저 논에도 일하는 엄니, 할머니….
대개는 혼자. 그 동그마니 작고 굽은 몸으로, 고적한 노동으로, 들녘을 초록 넘실거리게 일구어내고 있는 것.

▲ 지리산골 곳곳에 펼쳐진 다랑논. 모내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 논
들마다 허리굽혀 일하는 엄니아버지들.
ⓒ 김태성 기자

▲ 창원마을 사는 이옥순 할매(78). 고추밭에서 일하던 할머니는
대뜸 “나는 혼차 사요. 우리 딸이 낼 온다요, 나 디다보러. 어무니
날 몬 왔다고 온다요”라고 말을 건넨다. 딸 오는 게 그리 좋으셨나
보다. “새복부터 노물 뜯고 두릅 캐고 고사리 껑끄고…” 종일 바빴
다. 딸한테 뭐이든 다 싸주고 싶어서.
ⓒ 김태성 기자

남원 매동마을 뒤편 소나무숲에서 길은 시작
구불구불 끝없이 기어가는 흙길 옆에 붙은 논. 중황마을에 산다는 문씨 할머니(70)도 혼자서 모내기 준비중이다. 할아버지는 “하늘나라 가신 제 폴쎄 및 년”.

할머니가 이 산골로 시집 온 것은 스물 한 살때였다. 어즈버 나이 칠십이 됐건만 “몇 살에 시집 오셨냐”는 물음엔 수줍게 입을 가리고 웃기부터. “늦었제. 스물한나였응께. 넘들은 열일곱에도 하고 열야달에도 한디…. 우리 어매 아배가 해필 요 산중에다 나를 줬어. 맨나 울었제. 일을 못헌께. 전주서 시집와논께 농사 일을 해 봤겄능가. 시어매한테 맨나 야단 맞고 먼 산 보래꼬 우는 것이 일이었어. 인자는 일 잘 허제. 죽을 때 된께 일 잘 허네.”

그 연세에 지금도 논 몇 마지기랑 콩 팥 고사리 등등의 농사를 감당해내고 있다.
“딴 거 없어. 새끼들 줄라고 허제. 고 재미여. 요거라도 핀히 잘 묵고 잘 살라고.”
지리산길 걷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서 지나가다 말 붙이는 이들 많단다.
“인자 집에서 콩이라도 좀 볶아갖고 나올라고. 기냥 보내문 서운한께. 질 감서 톡톡 한나씩 묵으문 좋겄능가안. 덜 심심허고.”

낯선 길손에게 콩이라도 쥐어 보내고 싶어하는 마음이 그 길에 있다.
상황마을에 이르는 길엔 ‘다랭이길’이란 이름답게 층층으로 자리잡은 논들이 펼쳐진다. 한 걸음 뽈깡 올라선 순간, 예고편도 없이 불쑥 안겨드는 다랑논. 오랜 세월 피와 땀으로 일구어낸 논들이 굽이친다. 논 첩첩, 산 첩첩. 물잡아 놓은 논배미엔 지리산이 훌쩍 다가와 담겼다. 눈을 들어봐도 지리산, 굽어봐도 지리산.

▲ 길잡이 말뚝들 중 하나. 남원은 빨간색, 함양은 파란 색 선으로
표시돼 있다. 지리산길 심볼은 솔방울 생김새에서 땄다.
ⓒ 김태성 기자

경사를 극복하기 위해 지리산의 논은 수직적으로 확대됐다. 내리지르는 산골짜기에 논을 만들자니 층층이 돌로 석축을 쌓는 수밖에. 한 뼘이라도 땅을 더 만들려는 절박한 노력이 이룬 층층의 곡선들. 장엄하다. 석축은 대개 사람 키만 하거나 그보다 조금 낮지만 산세에 따라 사람 키 두 배를 넘는 것도 있다. 한 그릇의 밥, 한 뼘의 땅은 그렇게 간절했다. 오죽하면 ‘삿갓배미’ ‘공중배미’란 이름을 얻은 땅까지 생겨 났을까.

<우리 농부들은 모두가 땅이 마누라나 자식같이 사랑스런 사람들이다. 땅에 미치고 환장한 사람들이지. 저 땅을 그렇게 고생해서 일구고 그렇게도 사랑하는 것은 농부들인데, 정작 그 땅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냐?…그 땅에 대한 사랑은 날려보내 버리고 그들은 재화로서 흙덩어리만 가지고 있으니 이게 죄를 짓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

송기숙 《녹두장군》의 한 대목. 그 분노는 여전히 낡지 않았다.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했을 뿐”이라는 어록을 남긴 이와 같은 치들은 여기 와서 땅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아야 할 것이다.

ⓒ 전라도닷컴

간절함과 절박함이 이뤄낸 장엄한 곡선, 다랑논
이곳 지리산길에서 자주 만나는 표지판은 <농민들이 땀흘려 직접 재배하는 고사리입니다. 하나라도 절대 끊어 가서는 안됩니다> <눈으로만 바라봐 주세요…>. 그만큼 고사리밭이 많다.
상황마을 들목에서 만난 할머니도 고사리밭에 가던 길. “아들이 낮밥 묵고 나서 잔가 어짠가 기척 없길래 깰까비 가만가만 혼차 나선” 길이다. 두 번 세 번 허리 두드리며 쉬어가야 하는 걸음으로 고사리밭에 가신다.

해찰하듯, 샛길로 새듯, 상황마을 골목 안으로 접어들어 본다.
동순례(66)씨네 마당엔 고사리밭이 옮겨졌다. 고사리를 말리는 중. 이맘 때면 이 골목 어느 집이나 마당은 고사리 차지다.

밭에서 애쓰고 끊어왔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개려야제 삶아야제 몰려야제…” 고사리 하나에 손이 그렇게 많이 간다. “자주로 비가 와야 쓴디 날이 너무 가물아. 고사리가 통통하니 반반하니 올라와야쓴디, 가문께 많이 안나.” 

▲ 눈길 맞추면 거기 환한 낯빛의 꽃, 꽃, 꽃….
ⓒ 남신희 기자

가문 날씨 걱정중에도 고사리 자랑은 빠지지 않는다. “우리 동네 고사리는 느릇하들 않고 맛나”라고 자랑하던 순례씨가 부엌에서 고사리나물 한 접시를 내온다. “잡사봐”. 짤막 요리강좌도 이어진다. “물 잔 옇고 고사리 다마네기 옇고 마늘 조까랑 들깻가리 옇고 짤박하니 볶아. 고렇게만 해도 야들야들 낭글낭글 맛나.”

순례씨는 등구재 너머 마천면 학바우마을에서 이곳 상황마을로 시집왔다. 경상도 처녀가 전라도 아짐씨가 된 것이다.

“열아홉에 시집와서 육십 여섯이여. 지금은 차 타고 댕기는 시상이제만 옛날에는 (친정 갈라문) 걸어댕겼어. 인자 늙어서 누가 쥑이도 (걸어선) 못가. 젊은께로 차비 애낀다고 애기 업고 걸리고 그 고개(등구재)를 넘어댕겼어. 애 묵었제. 인자 질도 좋고 차로 보르르 갈 수 있는디 어매아배 다 돌아가셔 부렀응게 아무 소양없제.”

▲ 굽이치고 휘어지고 조붓하고 호젓하고…. 여러 길에 드는 기쁨
들이 펼쳐진다.
ⓒ 김태성 기자

등구재는 전라도∼경상도 잇는 고개

순례씨가 오래 전 친정 가는 길이었던 등구재를 넘는다. 거북이 등을 닮았다 해서 등구(登龜)재.
등구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른다, 아니 잇는다. 경상도 전라도 처녀총각 시집장가 가던 길, 나무하러 다니던 길, 경상도 마천 사람들이 전라도 인월에 장보러 가던 길, 소장수가 소를 몰고 넘던 길…. 얼마나 많은 발자국 쌓이고 삶의 사연들 쌓였으랴.

그렇게 마을과 마을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던 고갯길이었으나, 마을 아래 도로가 나면서  점차 잊혀져 가고 있던 길이다. 그 길에 사람들 숨결 다시 섞이고 있다.
점점 가빠지는 숨. “문경 새재는 웬 고개냐.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구나…”. 그 높다는 문경 새재도 삶의 고개에 비하면 암것도 아니라고 말하는 진도아리랑이 절로 떠오른다. 그렇게 고개 넘는 힘겨움도, 삶의 구부구부 넘는 힘겨움도 견뎠을 옛 사람들을 옛 길에서 생각한다.

고개 넘어 걷다보면 조붓한 오솔길 만난다. 길 옆엔 조그만 연못. ‘동물들의 오아시스’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쉿!

논에 댈 물을 얻기 위해 만들었던 저수지가 야생동물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도 하는 또다른 생명의 샘이 되었단다. 낮에는 새들도 많이 모여드니 천천히, 조심스럽게 지나가라고.
쫑긋 귀기울여 본다. 물까치는 ‘구이구이’ ‘곽곽’, 박새는 ‘쯔-비 쯔-비 쯔쯔비-쯔쯔비’, ‘뱁새’란 이름으로 더 친근한 붉은머리오목눈이는 ‘비, 비, 비, 비’ ‘씨, 씨, 씨, 씨’, 번식기의 딱새 수컷은 ‘힛, 힛, 힛, 삐쭈삐찌이히찌’ 운단다. 지리산길 안내센터에서 준 작은 책자 중 <지리산길-동식물이야기>에 그리 나와 있다. 혹시 들리려나.

▲ 초록 그늘 아래 쉼!
ⓒ 김태성 기자


▲ 생활의 필요가 낳았다. 할머니들이 만들어 메고 다니는
고사리 가방.
ⓒ 남신희 기자
지리산이 품은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마을이고 사람

창원마을 언덕 위 당산나무 아래서 잠시 걸음 쉰다.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다보는 자리.
창원마을 앞에도 다랑논은 펼쳐져 있다. 김봉귀(69)씨랑 아내 임옥남씨가 모내기를 하는 중이다. “쌀금이 워낙 싸서 남는 것도 엄따. 논이 있신께 있는 논 묵히들 몬해서 일허는 것이제.”
억척으로 일군 땅이 든든한 자랑이고 보람이던 시절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랑논을 두고 “싸우고 도망가기는 쉬버. 숨어불문 몬 찬는다”는 건 임옥남씨의 우스개소리.
고개는 경계였다. 등구재를 사이에 두고 말씨가 확연히 달라졌다. 전라도를 넘어 경상도에 든 것이다. 김봉귀 할아버지도 발자국 숱하게 보탠 고개. 실상사 근처 전라공업기술학교 3년 다니는 동안 매일 등구재를 넘어 다녔다. 그것만이 아니다. “오미자도 따러 가고 땔감도 하러 가고. 전라도 경상도 사이 혼인도 많애. 울어무니도 전라도라. 하이고, 여그는 지역감정 같은 것 엄따."

다랭이길은 창원마을 지나 금계마을에서 마무리된다. 흥미진진하게 읽던 책의 남겨진 페이지가 점점 얇아져갈 때 더욱 아껴, 더욱 천천히 읽어내듯, 이 길이 끝나간다는 예감이 들 때 걸음은 더욱 느릿해진다.

지리산이 품은 것은 자연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이고 마을이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길. 좋은 길은 맛난 밥상처럼 함께 나누고픈 사람들을 절로 떠올린다. 좋은 길은 돌아서면 금세 그리워진다.

아직 가지 않은 길 ‘산사람길’은 경남 함양 마천면 의중마을에서 휴천면 세동마을까지  10km 구간이다. ‘산사람’은 빨치산의 또다른 이름. 이성부 시집 《지리산》은 지리산에서 있었던 그 수많은 죽음들에 대한 진혼곡이기도 하다.

<이 길에 옛 일들 서려 있는 것을 보고/ 이 길에 옛 사람들 발자국 남아 있는 것을 본다/ 내가 가는 이 발자국도 그 위에 포개지는 것을 본다>(‘그 산에 역사가 있었다’ 중)
발자국 포갤 길이 아직 남아 있다.




여행쪽지

-지리산길 안내센터(남원 인월면·063-635-0850)를 찾으면 코스를 안내해 준다. 지도가 포함된 안내책자도 받을 수 있다. 지도가 없더라도 가는 길에 이정표가 잘 갖춰져 있으니 안심하시라.

-매주 수·토요일에 ‘길동무 프로그램’도 꾸려진다. 길잡이와 함께 시범구간 일부 코스를 걸을 수 있다. 매회 20명 제한. 지리산길 홈페이지(
www.trail.or.kr)에서 신청.

-도보길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출발부터 가능한 한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시기를. 인월버스터미널(063-636-2000), 함양시외버스터미널(055-963-3281∼2),

-마실 물은 미리 넉넉히 준비해야. 일단 지리산길에 들면 식당이 없으므로 도시락도 준비!

-잠잘 곳:  남원 산내면 매동마을(
http://maedong.org, 011-524-5325), 함양 휴천면 세동마을(www.songjunri.com, 055-963-7949), 실상사(남원 산내면,  www.silsangsa.or.kr, 063-636-3031),  지리산자연휴양림(함양 마천면, www.huyang.go.kr, 055-963-8133), 달오름마을(남원 인월면, http://dalorum.go2vil.org, 011-675-2231) 등.

-4시간이면 1구간 정도는 갈 수 있지만 해찰하기에 따라 시간은 무한정 늘어날 수도.

출처 : 오래된 미래마을
글쓴이 : 정풀홀氏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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